난징의 ‘30만 명’에 의문을 제기한 중국 여성들―쑹겅이는 해고되고 리톈톈은 정신병동에 갇혔으며, 아사히는 침묵했다

2024-01-09
다음은 다카야마 마사유키의 최신 저서 『헨켄지자이―아베 신조를 매장한 자는 누구인가』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책은 『주간신초』의 유명한 연재 칼럼을 단행본으로 엮은 시리즈의 최신작이지만, 원문을 더욱 다듬어 한층 더 읽기 쉽게 만들었다.
이 한 권만으로도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일본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난징대학살의 거짓을 간파한 중국 여성들(105쪽)
난징대학살이라는 거대한 허구는 중국인이 만들어냈다고들 한다.
그렇지 않다.
중국인은 흉내 내는 데는 능할지 모르지만, 이런 발상을 만들어내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니, 아니, 장제스가 영국 신문 특파원 해럴드 팀펄리에게 난징대학살에 관해 쓰게 한 것이다.
그것도 틀렸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의 시사·논평 잡지 『아시아』에서 일했다.
이 잡지는 펄 벅의 남편 리처드 월시가 소유하고 있었으며, 반일 선전을 지휘하던 미국 공보위원회(CPI)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CPI는 국무장관, 육군장관, 해군장관, 신문업계 대표들로 구성됐으며, 중국에 파견된 미국 신문사 특파원과 선교사들을 이용해 반일 선전을 벌였다.
시안사변 당시 쑹메이링과 함께 현지로 날아간 『뉴욕 헤럴드』의 윌리엄 도널드도 장쉐량을 위협해 장제스를 석방하도록 강요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정황증거밖에는 없지만, 당시 도널드는 “미국은 장제스를 선택했고 만주와 몽골을 중국에 넘겨줄 것이다. 약속한 대로 일본을 쳐라”라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뜻을 전달했다.
그 후 장제스는 루거우차오 사건을 일으키고 퉁저우에서 일본인 250명을 학살했으며, 마침내 6만 명의 중국 정예부대로 하여금 상하이의 일본 조계지를 공격하게 했다.
루스벨트의 의도대로 일본은 중국과의 수렁 같은 전쟁에 끌려 들어갔고, 전선을 난징과 우한까지 확대했다.
루스벨트는 CPI를 이용해 “사악한 일본이 선량한 중국을 침략하고 있다”라는 선전공작을 전개했다.
난징사건도 그 선전 재료로 이용됐다.
미국 신문사의 특파원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이 살해되고 여성들이 강간당했다”고 보도했다.
신의 종인 선교사 마이너 베이츠도 도쿄재판에서 “많은 중국인이 살해됐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곱게 죽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난징대학살 이야기는 너무나도 거짓 냄새가 났기 때문에 중국인조차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후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죄 없는 민간인 20만 명을 죽인 미국은 이에 맞설 재료로 난징대학살을 다시 꺼내 들 필요에 쫓겼다.
먼저 『아사히신문』은 사령부 발표라며 “난징 시내에서는 4주 동안 2만 명이 살해됐고, 잘려 나간 살점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고 보도했다(1945년 12월 8일).
그러나 당시 현장에 있던 이 신문사의 사진기자가 촬영한 것은 일본군 병사 곁에서 웃고 있는 시민과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원폭 투하와 균형을 맞추기에는 2만 명이라는 숫자가 너무 적었다.
그래서 도쿄재판 판결에서는 숫자를 한 자릿수 끌어올려 20만 명으로 만들었다.
두 발의 원자폭탄으로 희생된 비전투원들의 죽음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정상적인 학자라면 숫자가 갑자기 열 배로 늘어난 것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겠지만, 많은 학자는 그러지 않았다.
히토쓰바시대학의 후지와라 아키라와 쓰루문과대학의 가사하라 도쿠시는 20만 명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물론 후지와라는 『아사히신문』이 가져온 연막 사진을 두고, 코미디언 시무라 겐을 떠올리게 하는 말투로 “그렇다. 이것은 일본군의 독가스다”라고 해설했다.
그 일로 이 교수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가사하라도 일본군의 보호를 받으며 귀가하는 여성들을 촬영한 『아사히그래프』의 사진을 가져다가 “장난 지역의 여성들은 일본군에 납치됐다”, “강간당하고 살해됐다”고 썼다.
그 역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
그런데 일본의 정부개발원조, 즉 ODA를 원했던 장쩌민은 숫자를 ‘30만 명’으로 늘리고 난징기념관에 ‘30만 명’이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믿기 어렵게도 상하이전단직업학원의 교사 쑹겅이는 최근 수업에서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녀는 “30만 명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일본을 계속 증오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난징사건도 그 숫자도 허구라고 가르친 것이다.
한 여학생이 이를 몰래 촬영해 인터넷에 공개하자 그녀는 즉시 ‘해고’됐다(『인민일보』).
소동은 계속됐다.
쑹겅이의 처지를 걱정한 후난성의 교사 리톈톈은 SNS를 통해 그녀의 주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밀고한 학생을 처벌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자 정부 관계자들이 들이닥쳐 리톈톈을 붙잡고, “가족의 동의를 얻어”(『요미우리신문』) 정신병동에 처넣었다.
놀랍게도 중국에도 훌륭한 여성들이 있었다.
이에 반해 난징대학살을 선전해온 『아사히신문』은 이 여성들에 관해 단 한 번도 보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지와라 아키라가 총애한 제자인 요시다 유타카를 등장시켜 기존의 자학사관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러고도 신문을 자처하는가.
(2022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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