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진화와 국민적 영웅의 탄생 — 다카야마 마사유키가 비판하는 역사의 가공

시 주석이 원하는 국민적 영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이 정도까지 가공해야 한다.
다음은 오늘 발매된 『주간신초』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다카야마 마사유키 씨의 글이다.
이 글 역시 그가 전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저널리스트임을 증명하고 있다.
일본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글이다.
역사를 만드는 방법
싸이진화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무렵, 안후이성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기루에 팔려 간 뒤, 견습 기녀였던 열세 살 때 자신보다 서른네 살 많은 훙쥔에게 거두어져 그의 첩이 되었다.
훙쥔은 과거에 수석으로 합격한 청나라 말기의 유력한 외교관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독일 주재 공사로 임명되었고, 싸이진화도 그의 어린 아내로 동행했다.
그녀는 당시 중국 여성, 특히 기녀들 사이에서 널리 행해지던 전족을 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발가락을 안쪽으로 꺾고 천으로 묶어 인위적으로 작은 발을 만드는 것이다.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발의 길이는 약 10센티미터였다.
사람들은 이를 ‘삼촌금련’이라고 불렀지만, 건강한 발을 꺾는 것이니 그 고통은 보통이 아니었다.
세키 헤이 씨는 『중국의 세 가지 큰 악병』이라는 책에서 이 풍습을 여성의 인권을 끔찍하게 짓밟는 야만적인 관습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로 금련이라고 찬양받더라도 여성들은 제대로 걷지 못했고, 걸으면 극심한 통증이 일었다.
그럼에도 싸이진화는 그 대가로 공사 부인의 지위를 얻었다.
그러나 그런 발로는 유럽 사교계에서 춤을 출 수 없었다.
호기심 어린 시선에 노출될 뿐이었지만, 동시에 남성들의 관심도 끌었다.
실제로 훙쥔은 그녀를 빌헬름 2세 알현에 데려갔고, 몰트케의 오른팔인 참모차장 발더제에게도 소개했다.
그는 큰 관심을 보였고, 여러 차례 전족한 여성을 맛보았다.
훙쥔이 자신과 신분이 어울리지 않는 여성을 아내로 맞이한 것도 이 목적 때문이었다고 한다.
매우 중국적인 사고방식이다.
싸이진화는 4년의 재임 기간 동안 독일어를 익혔고, 황제도 뚜렷하게 중국을 편들기 시작했다.
그것이 청일전쟁 이후의 삼국간섭으로 이어졌다.
훙쥔은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훙씨 가문은 싸이진화가 집안의 격에 맞지 않는다며 내쫓았고, 그녀는 베이징의 유흥가인 ‘팔대호동’으로 돌아갔다.
이윽고 산둥성에서 외국인, 심지어 독일인까지 증오하는 의화단의 난이 일어났다.
20만 명으로 불어난 군중이 베이징의 외국인 거류지를 포위했고, 서태후의 정규군도 이에 가세했다.
시바 고로를 비롯한 각국의 수비병 500명이 분전했고, 55일간의 농성 끝에 마침내 8개국 연합군이 도착했다.
독일군 총사령관 발더제가 의화단을 몰아낸 뒤 처음 한 일은 ‘독일 황제를 위한 사흘간의 약탈’이었다.
그 사흘이 지나자 이번에는 ‘병사들 자신을 위한 사흘간의 약탈’을 허용했다.
미국, 프랑스, 러시아 병사들도 가세하면서 베이징은 학살과 약탈로 혼란에 빠졌다.
시민들은 일본군이 지키는 ‘북성’으로 피신했다.
그곳에서만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 기간에 발더제는 옛 지인인 싸이진화를 찾아내 다시 만났다.
총사령관의 특권을 이용해 자금성에 들어가 서태후의 침대에서 싸이진화와 황제처럼 하룻밤을 즐겼다.
점령한 도시에서 밤을 즐기는 서양인의 적절한 사례다.
발더제는 그러한 오만함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이지만,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자 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쩡푸의 『얼해화』에는 싸이진화가 “공사 부인으로 유럽 사교계에 등장해 뛰어난 말솜씨와 화려한 춤 동작으로 순식간에 사교계의 꽃이 되었다”고 쓰여 있다.
전족을 한 그녀는 춤은커녕 제대로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지만, 그런 사소한 일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귀국하자 의화단의 난이 일어난다.
베이징의 군중이 독일 공사 폰 케텔러를 살해하자, 샤옌의 『싸이진화』에서는 그녀가 등장한다.
샤옌의 『싸이진화』에는 그녀가 “당황한 공사 부인을 독일어로 위로했다”고 쓰여 있다.
8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진입하자 그녀는 “옛 지인인 발더제 사령관을 찾아가 보복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사령관은 그녀의 설득을 받아들여 베이징의 질서를 회복하고, 연합군 장군들에게 보복이나 약탈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베이징대학교 교수 류반눙도 『싸이진화본사』에서 “서태후보다 훌륭하다”며 그녀를 칭찬했다.
이렇게 전족한 매춘부가 베이징 사람들을 구한 영웅이 된다.
시 주석이 원하는 국민적 영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이 정도까지 가공해야 한다.
가련한 국민성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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