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인간의 생각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다
파시즘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인간의 생각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다
2019/10/29
다음은 앞 장의 계속이다.
전체주의가 만들어 내는 획일적인 기억
위안부 소녀상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잇달아 세워졌으며, 좌파인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동상이 늘어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상을 세우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 전체는 친일 청산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반드시 청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 강박관념이 전체주의로 향하는 경향을 낳고 있다.
동상을 세우는 세력은 좌파 노동조합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인데, 이들은 그 동상을 세움으로써 이익을 얻고 있다.
동상 건립이 전체주의로 이어지는 것은 불법으로 세워진 것이 방치되고, 그것이 전체주의로 향하는 한 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분기점이며, 그런 의미에서 대전의 동상은 법을 위반하고 있다.
그런데 불법으로 세워진 동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제막식에는 시장과 시의회 의장이 참석했다.
전체주의란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이다.
구소련의 경우에는 혁명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
한국에서는 ‘친일파를 청산해야 한다’는 하나의 생각이 법을 넘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그것이 전체주의이며, 바로 대전에서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전체주의로 나아가는 분기점을 넘어 버린 것이다.
한편, 미국에도 위안부 동상이 세워지고 있다.
미국 법에는 위반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동상을 세워 일본인을 자극함으로써 일본인의 한국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그 목적은 한국 내 친일 청산이라는 틀을 강화하는 것이다.
즉,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을 위한 동상이 아니라 일본인을 자극하기 위한 동상인 것이다.
미국에는 링컨과 워싱턴의 동상이 있으며, 이 동상들은 그 인물들을 기리는 것이다.
그러나 위안부 소녀상과 과거 노동자들의 동상은 일본인을 자극할 뿐만 아니라, 당시를 모르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과거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다시 경험하게 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분노와 추악한 감정을 낳는 잘못된 역사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다.
한국에는 백여 년 전, 아름답게 발전하던 조선 왕조에 일본이 강제로 들어와 자주적인 발전의 싹을 잘라 버렸다는 역사 인식이 있다.
일본만 들어오지 않았다면 한국은 훨씬 더 훌륭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역사관이며, 그 배후에 있는 것은 배외주의이다.
조선 왕조 말기, 흥선대원군은 ‘쇄국과 외국인 배척’을 주장했는데, 현재의 ‘징용공 동상’ 설치 배후에도 그러한 배외주의가 있다.
당시 노동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갔지만, 그러한 요소는 모두 배제되고 노예처럼 고통받았다고 묘사된다.
그것이 배외주의가 내세우는 주장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주입되는 ‘만들어진 기억’은 단 하나뿐이다.
그것은 다른 기억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어떠한 이견도 인정하지 않는 기억이며, 전체주의적이고 위험한 것이다.
만들어진 기억이기 때문에 이견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역사 인식 외에도 문재인 정부에는 전체주의를 지향하는 징후가 많이 있다.
헌법에는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쓰여 있다.
행복추구권은 개개인의 권리여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국가가 개인에게 행복을 준다’는 생각 아래, 국가가 만들어 내는 행복을 국민에게 주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이것도 전체주의이며 획일화이다.
고령자와 인지 기능 지원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에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정책은 개인을 공동체, 즉 지역으로 결집함으로써 국가가 획일적인 행복을 준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에도 전체주의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파시즘의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인간의 생각을 하나로 통일하는 것’이며, 특히 ‘과거에 대한 역사관’을 통일하려는 것은 위험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글은 계속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