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의 시대, 위장 신문――다카야마 마사유키의 아사히 신문 비판

2016년 5월 28일
다음은 어제 소개한 다카야마 마사유키의 최신 단행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거의 모든 장이 그가 전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저널리스트임을 증명하고 있다.
위장의 시대, 위장 신문
어느 국정선거에 투표하러 갔더니 구청장 선거의 투표용지도 건네받았다.
도쿄도민이라는 의식은 있지만 구민이라는 의식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사는 구에 따라 자동차 번호판이 ‘네리마’가 되거나 ‘아다치’가 되는, 그 정도이다.
아무리 고급차라도 ‘아다치’ 번호판이 붙으면 값싸 보이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그 정도의 인식밖에 없으니 구청장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구청장 위에는 도쿄도지사가 있고, 게다가 달리 할 일도 없어 보이는 도쿄도의회까지 있다.
후보자 명단을 보고 놀라서, ‘돈이 많이 드는 선거 따위는 그만두고 옛날처럼 도지사가 임명하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소속 정당으로 후보자를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모두 무소속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
이런 눈에 띄지 않는 선거에는 반드시 공산당원이 끼어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연필을 굴려 무작위로 고르면 공산당을 기쁘게 하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투표 후 아내와 딸에게 ‘모두 무소속’인 후보들을 어떻게 구별했느냐고 물었더니 운에 맡겼다고 했다.
내가 어떻게 투표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생각해서 기권했다고 답했다.
그 무소속이라는 문제가 이번 지바현 지사 선거에서 쟁점이 되었다.
당선된 모리타 겐사쿠는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실제로는 여전히 자민당원이었다.
아사히 신문은 시민들로 구성된 ‘모리타 겐사쿠 씨를 고발하는 모임’이 모리타 지사를 형사고발했다고 보도했다.
공산당 후보자가 세타가야구 구청장 선거에서 무소속을 자처하는 것과 자민당원인 모리타 겐사쿠가 그렇게 하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산케이 신문이 이 ‘시민단체’가 ‘사민당 소속 지바현 의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도한 점에는 관심을 가졌다.
즉, 정치적 색채를 띤 단체인 것이다.
그 정치적 색채를 알면 고발의 동기도 알 수 있는데, 왜 아사히 신문은 마치 ‘무소속’ 단체인 것처럼 ‘시민들의 모임’이라고 썼는가.
사민당 계열이라고 쓰면 곤란하기 때문인가.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편의에 따라 원칙을 바꾸는 아사히야말로 위장의 시대의 위장 신문이 아닌가.
2016년 5월 28일
이 대목에서 독자 여러분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의 논설은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저널리스트의 훌륭한 논고에 의해 완전히 입증되고 있다.
다음은 앞 장의 계속이다.
본문의 강조는 내가 한 것이다.
지바현 주민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지사를 비난하는 단체의 정체를 알고 싶을 것이다.
왜 아사히는 그것을 숨기는가.
모리타 지사는 이 사민당 계열 단체로부터 새롭게 고발당했다.
구체적으로는 돈키호테 대표 야스다 다카오로부터 정치헌금을 받은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파친코 업계의 95%가 외국인이라는 이야기라면 일반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키호테’가 재일 한국인에 의해 경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일반인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고 보니 이전에 이 회사의 점포에서 발생한 방화 사건으로 세 사람이 사망했고, 회사는 소방당국의 개선 지도에도 대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딘가 이상한 회사라고 생각했지만, 아사히는 당시 재일 한국인 기업이라는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과거 사민당 소속이었던 쓰노다 기이치는 조총련 계열 기업으로부터 급여를 받고 있었다.
그 사실이 드러나자 참의원 부의장직에서 사임했다.
재일 한국인 기업인지 아닌지는 정치인의 정치 생명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정보인 것이다.
어느 날 재일 한국인과 가까운 사민당 계열 단체가 그 회사가 사실은 재일 기업이라고 밝혔다.
왜 아사히는 그것을 다루면서 널리 알려진 사실인 것처럼 ‘재일 기업 돈키호테’라고 썼는지 모르겠다.
예를 들어 교토에서 여성 신도들을 폭행한 재일 목사에 대해 각 신문이 한국 이름으로 보도했을 때, 아사히만은 아무도 모르는 일본 이름으로 사건을 보도하는 데 집착했다.
이 신문은 일본의 조선 통치를 지금도 계속 부정하고 있다.
최근 지면의 논평에는 ‘창씨개명으로 한국 이름을 빼앗긴 것은 한국인에게 최대의 굴욕이다’라는 취지의 의견이 있었다.
그런데 이 신문은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한 동경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그것을 일본의 폭거라고 부르는 한편, 자기 신문 지면에서는 한국인들에게 일본 이름을 쓰게 하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굴욕’이 아닌가.
와카미야 요시부미는 최근 칼럼에서 위장육에 기대를 거는 이야기와 오자와 이치로의 ‘위장의 시대’라는 말을 다루었다.
어리석은 전직 논설위원에게는 어울리는 비유이지만, 사실을 보도하지 않고 편의에 따라 원칙을 바꾸는 아사히야말로 위장의 시대의 위장 신문이 아닌가.
(2009년 5월 7·14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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