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추상사의 벗들에서 아오야기 다케히코의 논문까지 — WGIP와 전후 일본의 역사관을 묻다

2020-08-30
얼마 전, 어떤 일을 검색하다가 발견한 논문이 있었다.
이 논문도, 저자도, 나로서는 전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논문의 훌륭함뿐만 아니라, 저자가 도쿄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이토추상사에서 활약한 경력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이 놓였다.
나는 사회에 나온 뒤 평생의 절친한 친구 두 사람을 만났다.
두 사람 모두 이토추상사의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비즈니스맨으로서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이었기에 회사의 요직을 맡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언론계에서는 니와 우이치로의 친중 발언과 함께 회사 이름이 등장하곤 했기에, 나는 내심 착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상사의 강점은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말하자면 중소기업의 경영자라는 데 있다고 느꼈다.
무엇보다 거래처의 대차대조표를 보고 순식간에 회사의 상태를 파악하는 그 역량이 참으로 훌륭했다.
또는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 종합건설사조차 전전긍긍할 법한, 방대한 건축 견적서를 보고 순식간에 세부 사항까지 확인하여 가격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능력.
지력·체력·기력이 삼위일체를 이룬 그들의 강인함이 곧 일본의 강인함이라고도 나는 느꼈다.
야쿠르트의 홈구장인 진구구장 백네트에는 이토추상사의 기업 메시지인 “한 사람의 상인, 무수한 사명”이 걸려 있는데, 그것을 볼 때마다 나는 바로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서두에 언급한 저자 아오야기 다케히코의 약력은 다음과 같다.
전 국제대학 교수, 학술박사.
1934년 군마현 기류시 출생.
현립 기류고등학교 졸업.
1958년 도쿄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이토추상사 주식회사에 입사.
동사 시드니 지점 식품부장, 본사 농산식품부장, 이토추시스템개발 주식회사 이사 등을 역임.
1985~1997년, 이토추와 NTT가 절반씩 출자한 합작회사 일본텔레마티크 주식회사의 사장과 회장을 역임.
1995~2006년 국제대학 GLOCOM 부소장·교수, 2006~2016년 동 기관 객원교수.
연구 분야는 경제학·경영학·재정학·정보사회학·법학·국제정치학·안보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스스로 사회과학의 제너럴리스트를 자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비디오텍스 전략』(인포메이션 사이언스), 『사이버 감시사회』(전기통신진흥회), 『개인정보 “과잉” 보호가 일본을 파괴한다』(소프트뱅크 신서), 『정보화 시대의 프라이버시 연구』(NTT출판), 『루스벨트는 미국 국민을 배신하고 일본을 전쟁에 끌어들였다』, 『일본인을 정신적으로 무장해제시키기 위해 미국이 왜곡한 일본의 역사』(하트출판) 등 다수가 있다.
나는 아오야기가 APA그룹 제7회 “진정한 근현대사관” 현상논문 공모에서 우수상을 받은 논문을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일본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논문이다.
얼마 전 밤, 내가 정말 용납할 수 없다고 느꼈던 NHK·Watch 9을 지배하는 아리마와 NHK 직원들의 사고 구조를 완벽하게 표현한 대목이 무수히 많다.
■ 일본인은 왜 손쉽게 WGIP의 먹잇감이 되었는가
첫째, WGIP가 교묘하게 은폐된 채 극비리에 실행되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세뇌 계획의 존재조차 몰랐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이념을 대대적으로 소개했으므로, 그것이 전후 일본의 이데올로기와 교육 이념에서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했다.
그 이념의 본산인 GHQ가 “언론의 자유”를 부정하고 세뇌를 추진하고 있었다고는 일본 국민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둘째, GHQ가 선전한 사안 중 상당수는 전시 기밀이었고, 전사 자료 등은 모두 폐기되어 버렸기에 일본인들은 진위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 때문에 일본인들은 군국주의자들이 거짓말만 늘어놓으며 국민을 속였다는 구도를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 버렸다.
셋째, 일본인들이 신뢰하는 학계의 거의 전부가 도쿄재판 사관을 무비판적으로, 그저 고분고분 받아들였고, 더욱이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논문과 저서를 내놓아 혼란을 증폭시켰다는 점이다.
특히 주요 역사학자들은 너나없이 도쿄재판 사관을 지지하며 일본의 과거 역사를 모두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연구 성과를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한 학자들에게 배운 학생들 가운데 많은 이가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자학사관을 주입했다.
이렇게 도쿄재판 사관은 역사교육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 차례차례 각인되어 갔다.
역사학연구회 위원장이자 히토쓰바시대학교 명예교수인 나가하라 게이지 같은 이는 자신의 저서에서 “일본의 역사학은 도쿄재판을 통해 역사를 올바르게 보는 법을 배웠다”라고까지 말했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역사학계는 지금도 도쿄재판 사관 지지에 완고하게 사로잡혀 있는 것이 실정이다.
제대로 된 역사 인식을 주장하는 이들은 역사학계와는 인연이 없는 학자들뿐이다.
평론가이자 영어학자인 와타나베 쇼이치, 서양경제사학자 고 분유, 독문학자 니시오 간지, 철학자 하세가와 미치코, 영문학자 나카무라 아키라, 언론인 사쿠라이 요시코, 전 항공자위관 우시오 마사토, 독문학·비교문학자 고보리 게이이치로, 유럽외교사·국제정치학자 나카니시 데루마사, 수학자이자 수필가인 후지와라 마사히코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직함을 넘어 폭넓고 뛰어난 지적 활동을 하고 있다.
법학계도 마찬가지다.
도쿄재판의 실체는 승전국에 의한 불법적인 린치였으므로, 연합국조차 그 타당성을 확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도쿄제국대학교 법학부에서 국제법의 세계적 권위자로 여겨지던 요코타 기사부로 교수는 놀랍게도 도쿄재판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쟁범죄론』을 집필하여 도쿄재판 사관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고, 또한 “거의 모든 국가 사이에 침략전쟁을 국제범죄로 보려는 강한 의향이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라고 말했다.
당시 다른 많은 법학자도 눈사태처럼 이에 뒤따랐으니, 실로 WGIP의 위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 글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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