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의 역사 공부 부족—시진핑은 왜 대만에 집착하는가

2024-01-10
다음 글은 오늘 발매된 《주간신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다카야마 마사유키의 연재 칼럼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글 역시 그가 전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언론인임을 증명한다.
일본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글이다.
겁쟁이의 역사 공부 부족
시진핑은 왜 대만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그것은 “반식민지화라는 부정적인 역사를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아사히신문의 하야시 노조무 기자는 썼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 총서기로서는 처음으로 웨이하이웨이를 방문해 깊은 상념에 잠겼다”고 한다.
그곳은 청일전쟁 당시 마지막 해전이 벌어진 무대였다.
포대의 보호를 받는 항구 안에는 황해해전에서 살아남은 전함 ‘딩위안’과 ‘전위안’, 그리고 순양함 세 척이 피신해 있었다.
이곳이라면 더 이상 침몰할 걱정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일본 수뢰정들이 항구 안으로 돌입해 ‘딩위안’을 어뢰로 공격했고, 이어 순양함 세 척도 침몰시켰다.
북양함대는 소멸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결말을 목격한 제독 딩루창은 생아편을 들이켜 자살했다.
아편은 강력한 독극물이기도 하다.
딩루창이 죽고 싶어졌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앞서 벌어진 황해해전에서 청나라 함대는 일본 함대를 압도하는 중량급 함선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핵심 순양함 두 척이 겁을 먹고 적전 도주를 벌였고, 그 때문에 참패를 당했다.
그처럼 볼품없이 패배하면서 중국이 ‘잠자는 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러시아는 뤼순과 다롄을, 영국은 웨이하이웨이를, 프랑스는 광저우만을, 독일은 자오저우만을 거저 차지했다.
일본은 그들과 달리 정당한 전쟁배상으로서 청나라가 ‘교화가 미치지 않은 땅’이라며 꺼리던 대만을 할양받았다.
나는 시진핑이 그처럼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에 서서 중국인, 즉 한족의 무능함을 한탄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는 “국력이 강해진 지금, 열강으로부터 겪은 고난의 역사를 극복하고 본래 있어야 할 모습으로 되돌아갈 때가 왔다”고 선언한다.
하야시 기자는 그것이 바로 대만 통일이라며, 시진핑의 각오를 상당한 감정을 담아 서술한다.
참고로 하야시 노조무는 중국인 ‘린왕’이 아니라 하야시라는 성을 가진 일본인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중국공산당 정부가 무슨 근거로 대만에 대한 잠재적 주권을 주장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본의 대만 영유에는 어떠한 속임수도 없었다.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미국의 하와이 병합보다 훨씬 도덕적이었다.
백번 양보해 대만이 “청나라의 영토였고 중국공산당 정권이 그 계승자이므로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보다 먼저 되찾아야 할 곳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 베트남이다.
대만은 청나라가 말했듯 ‘교화가 미치지 않은 땅’이어서 사람조차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베트남에는 과거 안남도호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중국의 직할 영토였다.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한 아베노 나카마로는 말년에 안남절도사를 6년 동안이나 지냈다.
그러나 청일전쟁이 일어나기 조금 전의 청불전쟁에서 프랑스에 빼앗겼다.
프랭클린 루스벨트(FDR)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카이로회담 당시 장제스에게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원한다면 돌려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C. 손, 《미국과 영국에 있어서의 태평양전쟁》).
그러나 이어지는 기록에 따르면 “장제스는 거절했다.”
아마도 드골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FDR는 홍콩도 장제스에게 돌려줄 생각으로 영국 식민지장관 올리버 스탠리에게 “홍콩은 불법적으로 빼앗은 것이 아니냐”고 떠보았다.
영국 식민지장관은 “그렇습니다. 아마 미국·멕시코 전쟁이 벌어졌을 무렵이었지요”라고 대답했다.
이는 미국이 훨씬 더 악랄한 방법으로 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를 빼앗지 않았느냐는 의미였다.
시진핑이 진정으로 “반식민지화의 역사를 극복”하려 한다면, 대만보다 먼저 베트남을 되찾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물론 중국공산당은 1979년에 이를 한 차례 시도했다.
중국공산당은 중화와 이민족을 구분하는 화이질서에 유난히 민감하다.
중국이 총애하던 폴 포트 정권을 베트남이 괴롭힌 데 분노해 응징에 나섰다.
이것이 중월전쟁이었다. 인민해방군 20만 명이 공격했지만 오히려 철저하게 격퇴당했고, 불과 2주 만에 약 3만 명이 전사했다.
즉 중국은 베트남에는 다시는 손을 대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베이징조약을 통해 연해주를 위협해 빼앗은 러시아에도 돌려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했다가는 푸틴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세계에 본보기를 보이겠다며 거리낌 없이 베이징에 핵무기를 날릴 수도 있다.
두려워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왜 하필 대만인가.
그곳이라면 이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중월전쟁도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한 전쟁이었다.
겁쟁이일수록 역사를 배워야 한다.

2024/1/9 in Ky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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